명승지

김삿갓 계곡

winstontower 2009. 3. 26. 11:05

 

 

김삿갓 계곡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지날 때마다 나무로 참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고 느꼈던
삿갓할아버지가 입구에 서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른편엔 명국환이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있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넘어 가는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바윗틈을 돌아나와 옥동천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김삿갓 계곡.
여름철이면 피서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미국쑥부쟁이 길가 너른 밭에 한가득
안개꽃처럼 잔잔하게 피어 구름같다.
 
 
옛날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 장수가 힘자랑을 하기 위해
집채만한 이 바위를 들어서 작은 바위 위에다 올려놓았다 해서
'든돌'이라 하고 마을을 '든돌마을'이라 부른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평생을 떠돌아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그의 일가가 살던 집터와 묘소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은 1992년이다.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인 김병연이 다섯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선천 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군에게 항복하였고
이듬해 난이 평정된 후 김익순은 처형당하고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영월군
와석리 깊은 산중에 숨어살게 되었다
 
 
김병연이 20세 되던 해인 1827년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그는
김익순의 죄상을 비난하는 글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로부터 숨겨왔던
집안내력을 듣게 되었고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과
조부를 비판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탄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늘이 부끄러워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아내와 아이와 어머니를 가슴아픈
눈물로 뒤로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으니...

 
삿갓으로 하늘을 가린 채 세상을 비웃고 인간사를 꼬집으며
정처없이 방랑하던 그는 57세 때 전남 화순땅에서 객사하여
차남이 이곳 와석리 노루목에 모셨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