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안식처 몬세라트 수도원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연유로 이토록 험준한 바위 산 속에
수도원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중세 수도원을 애워 싸고 있는
몬세라트의 기묘한 바위산의 형상을 보면서
자연의 조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오늘날 수도원은 몬세라트 산 허리에 터를 닦아서 기묘한 바위산만큼이나
거대한 몸매로 자리잡고 앉아 밀려드는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기록상으로 보면 8세기 경 이곳에 수도원이 둥지를 틀 무렵에는 물론
오늘 날과 같은 이런 규모는 아니었다.
어디나 출발이 다 그러하듯 옛날 초기의 수도원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둥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묘한 자연과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몬세라트
수도원은 많은 순례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역사의 부침 속에 부서지고
재건축되기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가우디가 찾아와 거닐던 곳
-수도원행 자동차가 진입하는 동편길-
가우디는 본래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다. 그래서 남달리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놀라운 몬세라트의 자연현상을
보고 한없이 경탄하며 사랑했다.
그리고 수시로 이곳에 찾아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신비한 자연의 현상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예술혼 속에도 이런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불어넣어 달라고 기도했다.
가우디의 꿈은 실현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 몬세라트에서
말할 수 없는 영감을 얻은 그는 마침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건축예술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바다와 몬세라트의 경이로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건축들은 태어날 때마다 하나의 새로운 건축예술이 되었다.
비록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지만 지금도 망치 소리가 들리는
바르셀로나 한 복판에 우뚝 선 미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대성당은 그 얼마나 경이로운
가우디 건축 예술의 꽃이던가.
옛날의 자취는 사라져 버렸지만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이 15세기 경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고딕 건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 수백 년의 풍상을 지나오는 동안 보수와 재건을
거듭한 끝에 비로소 19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부터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수도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아름다운 산 속의 수도원은 1811년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으로 사정없이 무참히 파괴되고 많은 성직자들도 함께 희생되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지금 보이는 수도원 건물들은 예전의 형태가 아니라 나폴레옹 전쟁 때
파괴된 것을 20세기에 와서 재건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몬세라트 수도원의 천 년 역사의 흔적은 터만 남아 있을
뿐 자취는 거의 사라지고 만 셈이다.
-촛불봉헌을 위해 양초를 사는 이들-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성령의 양초를 사서 촛불봉헌을 준비한다.
노란색 양초는 우리 돈으로 약 2천 원 정도하고, 붉은 색의 양초는
3천 원 정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양초를 사서 불 밝혀 기도드린다.
촛불봉헌을 위해 초를 사는 이들 속에 남자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남자보다 여성들의 신앙심이 더 깊은 것일까?
3천원 짜리 양초는 반쯤 팔려나갔는데, 노란색 2천원 짜리 양초는 아직도
박스에 많이 남아 있다.
-촛불 봉헌을 하는 사람들-
촛불 봉헌대 앞에서 정성된 마음으로 촛불을 켠다.
형형색색의 촛불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속세의 어둔 세상을 밝혀 줄 것이다.
그런데 2천 원짜리 사는 사람과 3천 원짜리 양초를 사서 불 밝히는 마음을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헤아리실까.......
그리고 왜 색깔별로 가격을 차별해서 팔아야 되는지 잠시 생각해본다.
봉헌대에 있는 촛불들을 보니 2천원 짜리 노란 촛불보다는 3천 원짜리
빨간 촛불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사월 초파일 우리나라 절에서 파는 고가의 연등에 비하면 이곳에서 파는
촛불은 그래도 너무 소박한 값이 아닐까?
몬세라트 바위는 조물주의 예술 작품
-무너져 내릴 것 같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수도원의 거대 함벽-
천 년 전에 터전을 잡은 이곳은 카탈루냐 사람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메카,
영혼의 고향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옛날 기독교 은둔자들이 이곳에 처음 거주할 당시였던
888년에 베네딕투스 수도회가 이들에게 관할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수도원으로 독립하여 그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수사들이 80여명 쯤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 오는 곳
--몬세라트 산 중턱 계곡-
몬세라트 산허리에서 밑을 바라보면 가파른 능선 아래로 까마득히
산 아래쪽으로 도
로가 보인다.저 산 애랫 쪽에서부터 암벽열차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암벽열차를 타고 몬세라트 산을 오르다보면 정말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코스는 이렇게 경사진 면을
따라 수직으로 올라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산세가 험한 산임에는 틀림없다.
이곳 몬세라트 수도원을 찾는 일반 여행객들은 오전에 바르셀로나에서 출발
해서 대개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돌아가는 코스로 여긴다.
가우디, 달리, 미로 등
천재 예술가들을 길러낸 토양 카탈루냐
-산타마리아 광장의 남쪽 부조벽-
이곳 카탈루냐 지방의 진주 바르셀로나는 15세기에 지중해무역으로
번영했던 아주 멋진 항구도시다.
그래서 당시 이 지역에는 고딕 미술이 꽃을 피웠다.
그 영향으로 몬세라트 수도원도 중세에는 카탈루냐 고딕양식의 건축이었다.
바르셀로나는 18세기에 와서 스페인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근대 미술도 함께 꽃피우게 되었는데, 그런 문화적 토양위에
자라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비롯해서 달리, 미로
같은 눈부신 천재 예술가들이 줄줄이 탄생한다.
그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수도원에 누워-
' 명승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리카에 있는 늪속의 도시 (0) | 2011.12.19 |
---|---|
안데스산맥의 위용 (0) | 2011.12.19 |
찰스 황태자의 신혼여행지 카프리 (0) | 2011.12.19 |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0) | 2011.12.19 |
페루 마추피츄 (0) | 2011.12.19 |